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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4
인왕산·백악산·북한산 전
‘인왕산·백악산·북한산 전’을 열면서
이번에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에서 ‘전북아티스트지원사업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 전시공모선정’ 작가로 현장의 필치로 담아낸 ‘인왕산·백악산·북한산 전’을 열게 되었다. 전북도립미술관은 인사아트 센터 6층에 서울관을 두고 전 해에 전시 작가를 선정해 전시를 운영해오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서울의 입지를 이루는 산천과 한양도성 등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체계적으로 그려왔다. 그리고 많은 전시를 해 왔다.
조선이 도읍으로 정한 한양은 풍수지리에 입각한 매우 빼어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궁궐 및 주요 시설 등을 그러한 입지 특성을 살려 배치함으로서 편안하면서 건축과 수려한 자연이 아우러진 모습이 갖춰지도록 했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그려진 한양도 및 궁궐도에는 그러한 입지 특성을 그림의 골격으로 나타내어서 당시 사람들의 입지적 시각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한양도성의 윤곽 및 실제 산들의 위치와 그림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림에는 관념적인 해석도 크게 작용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그 관념적 대상의 실제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
이번에 여는 전시는 서울의 중심에서 일상생활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인왕산, 백악산, 북한산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국가시설로 보호되고 있는 조선의 궁궐들은 저층 건물과 너른 녹지공간을 갖추고 있어 도심내 허파 구실을 하고 있다. 특히 경복궁은 한양의 위계적 중심성을 갖추고 있는 가운데 배산인 백악산과 사신사의 우백호에 해당하는 인왕산이 가까이 감싸고 있어 자연을 중시한 과거의 입지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로써 이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빼어난 자연 경관을 향유하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일상에서 무심히 스쳐 지나기 쉬운 그 풍광들을 그림을 통해 확연히 인식할 수 있게 하고자 했다.
백악산은 한양도성의 지리적 중심으로서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우뚝 솟아 오른 기세가 장엄하며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이 그 산을 배경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백악산을 바라볼 때는 을지로 입구 광장의 소라 조형물을 떠올리게 된다. 평지에서 홀로 솟아 오른 듯 우뚝 선 가운데 곳곳에 바위가 솟아 있어 굳세게 다가온다.
겸재의 ‘인왕재색도’로 유명한 인왕산은 수려한 형상에 화강암 골기의 큰 기세가 뿜어 나온다.
주 경관이 백악산의 직각방향으로 길게 늘어져 있어 경복궁 쪽에서 바라볼 때 산세에 둘러싸인 느낌이 커지게 된다. 화가들이 인왕산을 그릴 때는 부담감이 생긴다고 한다. 겸재가 그린 인왕재색도가 워낙 특출해서 금세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악산 뒤로 거대하게 펼쳐져 있는 북한산은 비봉능선과 함께 보현봉, 형제봉, 응봉 능선으로 이어진 줄기가 백악산 인왕산과 함께 어우러져 산세의 깊이감을 더하며 도시의 분주한 일상 중에서도 산세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한 빼어난 산세 풍광을 일상에서 대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지난 20년 가까이 북한산과 한양도성을 비롯하여 서울의 산과 한강 등 서울의 입지를 이루는 지형 요소들을 그려왔다. 나의 서울 산세 그림은 기록의 의미를 두고 출발했다. 한양의 명당설에 따른 입지 체계를 실경으로 남길 목표로 한양의 내사산·외사산 그리고 백두대간의 정기가 한양으로 흘러드는 지맥으로 서울 입지에 큰 의미를 갖고 있는 북한산과 한강 등을 오랫동안 그려왔다. 작년에 동궐도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면서 그것의 높은 사료적 가치와 조선시대 기록화의 중요성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의 배경에 나타나 있는 한양도성의 산세 표현에 주목하면서 한양의 옛 그림에 나타나 있는 입지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서울의 내사산 등은 조선시대 명당설에 따라 관념적으로 의미가 강조된 측면이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입지를 이루는 지리적 요소의 실제 모습을 현장에서 충실히 담아내려는 태도로 임해 왔다. 빼어난 풍경을 실경으로 충실히 담아내는 것 자체로 회화로서뿐 아니라 사료적 가치와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현장에서 다가오는 생동감과 크고 장대한 산세의 기운을 최대한 크게 느껴질 수 있게 하고자 했다. 아울러 필치의 힘과 기세를 살리고자 하며 세부적인 표현보다 전체적인 기운을 크게 담으려 한다. 그것이 내 그림의 개성을 갖게 하는 요인이라고 본다. 전시장에서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독특한 느낌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실재 산의 기세를 크고 장대하게 담아내기 위해 화폭을 크게 할 때가 많다.
나의 작업은 그리려는 대상의 충실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그리기에 앞서 산세의 흐름과 산맥의 구조를 먼저 생각한다. 전체를 파악하고 나면 대상의 핵심을 단숨에 그릴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고 그림에 힘이 실리게 된다. 그런데 점차 새로 들어선 건물과 웃자란 나무들에 가려져서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곳도 있다. 하지만 서울의 산들을 오랫동안 오르내리며 주의 깊게 보아 와서 그 형상과 산맥의 줄기를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현장 작업만을 고수해 왔다. 그래서 그릴 때마다 매번 큰 화판과 화구 등을 챙겨 산을 오르내려야 했다. 그리고 전체 풍광을 담기 위해 전경, 원경, 주요 봉우리, 주능선, 성문 및 성곽, 계곡 등 목차를 정하고 체계적으로 그려왔다. 아울러 실재감을 높이기 위해 길게 가로로 펼쳐 그린 그림들이 많다. 가장 긴 그림은 7.3m나 된다. 전시를 계속해 오면서 작품이 많아지고 내용도 점점 더 충실히 갖춰지게 되었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 가운데는 ‘산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그것은 내가 가장 중시하는 점이기도 하고 내가 현장 작업만을 고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모습을 충실하고 생동감 있게 전달하려는 생각을 갖고 임해왔다. 더불어 힘찬 필치의 기운을 담고자 했다. 대상으로부터 받은 감동을 붓이라는 도구를 통해 기세 있는 필치로 나타내고자 한다.
일상에서 문득 대해온 친근한 산세를 장대한 크기에 현장의 필치로 담아낸 이번 그림들을 많이 보아주시길 기대한다.
2023년 8월
一梅軒에서 김석환